혼백[魄] 떠난 무덤 봉안당(奉安堂)!!
혼백[魄] 떠난 무덤 봉안당(奉安堂)!!
  • 허정 이상엽
  • 승인 2018.06.1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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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변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이치도 변하는 건 아니다. 모든 변화는 불변의 이치 속에서 이루어진다. 대자연의 순환법칙을 따르는 건 순천(順天), 이를 따르지 않는 건 역천(逆天)이 된다.

허정 이상엽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변하지 않는 이치를 바탕으로 변화를 추구해왔다. 삶의 방식은 물론 영원한 이별을 고하는 장례의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효도[孝]를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겨온 우리 조상들은 조상의 유골을 명당에 모시고, 묘지를 잘 돌보는 것은 후손의 당연한 임무로 여겼다. 삶과 죽음을 둘로 여기지 않고, 묘지는 조상의 7백[體魄]이 머무는 만년유택(萬年幽宅)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리한 관리, 저비용 등을 앞세운 경제논리와 일부 역술인들의 화장은 무해무득(無害無得)하다는 근거 없는 주장은 매장을 화장위주로, 묘지위주를 봉안당[납골묘]위주로 바꾸어 놓는데 크게 한몫하고 있다. 우선 되는 경제논리가 우리 조상들의 가치관을 뒤바꾸어 놓은 큰 변화지만, 합리적인 변화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자연의 순환법칙에 순응하고, 삶과 죽음을 둘로 여기지 않는 효(孝)사상 등 우리 조상들의 가치관을 고려하면, 잘 모셔져 있는 조상의 묘를 파헤쳐 유골을 불태워 항아리[函]에 담아 봉안당을 조성하는 건 죄인의 관(棺)을 쪼개어 시신의 목을 베었던 부관참시(剖棺斬屍)보다 더 가혹한 형벌을 조상님께 가하는 것이 되고, 또 운명(殞命) 후 곧바로 유골을 불에 태우는 것은 기억력을 주관했던 7백(七魄)은 구천을 떠돌다가 유전인자가 같은 그 후손에게 재앙을 가져다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죽었다”하지 않고 왜 “돌아가셨다”고 할까?

묘지는 조상 7백의 안식처이다. 때문에 묘소를 파헤쳐 유골을 불태우는 것은 조상의 안식처를 강제로 빼앗는 것이 되고, 편안이 쉬고 있던 조상의 7백을 내쫓아 머무를 곳이 없게 하는 것이 된다.

이런 사실은 “유골[形]이 존재하면 백(魄)도 존재하고, 유골[形]이 변화(化)하면 백(魄)도 흩어진다(邵子曰…形存則魄存, 形化則魄散).”라고 한 소장절(邵康節) 선생의 말씀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항아리[函]에 담긴 조상 유골의 재[灰]는 대부분 20년을 채우지 못하고 모두 벌레 되어 밖으로 기어 나오고 빈항아리만 남는다. 따라서 불에 태운 유골 재[灰]를 항아리[函]에 담아 봉안당에 모시는 것보다 양지바른 언덕위에 뿌리는 것이 그나마 더 나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사람의 상상력을 주관했던 3혼은 하늘로 돌아가고 기억력을 담당했던 7백은 땅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죽었다”고 하지 않고 “돌아가셨다”라고 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묘지를 파헤쳐 유골을 불에 태워 봉안당을 조성하는 건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의 가치관과 자연의 순환법칙, 그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임을 고려하면 화장이나, 파묘 후 화장과 봉안묘 조성은 천륜과 인륜을 모두 저버린 유해무익(有害無益)한 패륜의 극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난세에는 소인이 대인을 부리고, 선과 악이 뒤바뀌는 것 등이 진리로 통용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대세인 화장을 폐륜으로 치부하는 것 또한 편견으로 비춰질 수 있다.

역리학당 오원재 허정 이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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