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문화원, 서산지역 3.1운동 알리는데 앞장서
서산문화원, 서산지역 3.1운동 알리는데 앞장서
  • 최형순 기자
  • 승인 2020.02.27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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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문화원은 27일 다가오는 3.1운동 10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서산지역의 소중한 역사와 희생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편세환 서산문화원 원장은 서산지역 3.1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서산지역 3.1운동은?

3.1절을 맞이하여 1919년 서산지역에서 일어난 3.1만세운동을 재조명하고자 운산면 출신 김상기(사학자)교수의 서산지역 3.1운동에 대한 논문을 축약하여 정리한 내용임을 밝히는 바이며, 현세에 살고있는 우리 후세들은 과거 우리 선인들의 애국정신을 본받아 그분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여야 할 것이다.

- 서산지역 3.1운동의 배경은?

서산지역에는 홍성의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의 문인인 김한록(金漢綠, 1722~1790)을 통하여 남당의 학문이 전수되었다.

김한록의 학문은 위정척사의 이념인바 조선 말기 그의 손자 김상정(金商圢)에 이르기까지 가학(家學)으로 계승되어 애국정신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1899년 화서(華西) 이항노(李恒老)의 학맥을 이어온 유학자 유진하가 서산시 운산면 거성리 추계마을로 이주하며 후진 양성에 진력한바 항일사상이 고조되었다. 그는 김복한, 김상덕 등 인근 유생들과 교우하면서 척사론(斥邪論)을 펼쳤으며 향풍진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1906년에는 당진 대호지면 의령남씨들이 운영하는 도호의숙(桃湖義塾)에 초빙되어 강학을 하던중 전염병에 걸려 사망하였다. 유진하가 세상을 뜨자 그의 문인인 이철승이 숙장으로 활동하면서 강학을 통하여 제자들과 주민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하였다. 그가 가르친 문하생중, 대호지 3.1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남상락, 남상돈, 남상집 등을 배출하였다.

이철승은 원사 이정구의 후손으로 1879년 서산군 음암면 탑곡리 송내마을에서 태어났다. 유진하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성리학을 배우고 철저한 위정척사론자가 되었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이 학문의 근원이며 사서오경(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 / 오경-역경, 서경, 시경, 예기, 춘추)이 학문의 중심이라 하고 유학의 충효사상을 가르쳤다.

이철승의 문인으로는 서산의 김흥제, 유기철, 이병철, 이재승, 이학수, 정재옥, 최봉환, 한동벽, 이철영, 한원우 등이 있다. 그들 중 이철영은 음암면 문양리 출신으로 음암면 탑곡리에 거주하면서 이철승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학행이 돈독한 우국지사였다. 그는 1910년 8월 서산시내 벽보판에 붙은 한일합방문을 보고 격분하여 벽보를 찢어버리고 서산경찰서에 들어가 한일합방의 부당함을 외치다가 즉시 구속되었다. 그는 3개월간 구금 끝에 공주교도소로 이송되던 중 홍성군 금마면 산중에서 호송하던 왜경을 살해하고 도주하였다. 그 후 당진군 정미면 수당리 구문도(具文途) 집에 숨어 살다가 10여 년 후 동생의 처남인 최숙현의 주선으로 이선영(李宣英)이라 개명하고 살았으며, 당진군 송악면 노공재(盧公在)씨 집에 서당을 열고 후진양성에 힘썼다. 그는 광복의 기쁨을 못본 채 1945년 6월 음암면 상홍리에서 별세했다. 1960년 11월 그의 항일투쟁을 기리기 위하여 서산군민들이 힘을 모아 서산군청 앞에 이철영의사 추모비를 건립했다. 그 외에도 민태직(閔泰稷), 정재학(鄭在學), 전우(田萭), 김건주(金建周) 등 많은 인사들이 항일투쟁에 참여했다.

- 3.1 독립만세운동 전개은?

서산지역에서 3.1운동은 3월 16일 서산읍에서 봉기한 것을 시작으로 3월 19일과 3월 24일에는 해미에서, 3월 31일에는 팔봉면에서, 4월 5일에는 운산면 고산리에서, 4월 8일에는 성연면과 음암면, 운산면 여미리와 용현리에서, 4월 10일에는 수평리와 갈산리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서산시내에서의 3.1운동은 천도교와 기독교인들이 각기 예식과 예배를 마치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가행진을 하였고 이에 다수의 군중들이 호응하면서 크게 시작되었다.

해미면에서는 3월 10일 남상철(南相喆)의 주도로 전개되었으며 3월 24일 다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날은 해미 저축조합 서기인 이계성의 주도로 해미보통학교 졸업생 환송회에서 시작되었다. 해미보통학교 학생들은 밤 11시경 기독교인과 주민들과 함께 읍내리 면사무소와 우시장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불렀다.

팔봉면에서는 3월 31일 밤 9시경 산에 올라 횃불을 들고, 해안에서는 등불을 달아놓고 일제히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고 시위했다.

성연면에서는 4월 8일 김옥제 등 갈현리 주민들을 중심으로 성암산에 올라 만세를 불렀다.

운산면 여미리에서는 4월 8일 밤 10시경 주민 300여 명이 산에 횃불을 밝히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자 일본헌병 4명과 보병 2명을 급파하여 시위군중을 진압함에 군중은 투석으로 맞섰다. 또한 4월 10일 수평리 주민 300여 명이 만세를 외쳤고, 갈산리에서도 같은 날 11시경 주민100여 명이 산에 올라 만세를 불렀다. 이에 놀란 경찰이 출동하여 진압과정에서 발포하여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당했다.

음암면에서는 4월 10일 밤 11시경 부장리 채돈묵(蔡敦黙) 등 주민들이 횃불을 들고 만세를 부르자 일본경찰과 보병이 출동하여 발포하므로 2명이 부상을 당했다.

지곡면에서는 최정운, 최금순, 최학순 등이 천도교인들과 함께 부성산에 올라가 만세를 불렀다.

이와 같이 서산지방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서산, 당진, 주재 경찰과 헌병, 공주주둔 일본군 수비대를 동원하여 강력 진압하였다.

해미의 이계성과 김관용을 비롯한 200여 명이 검속되었으며 운산면 갈산리와 수평리에서는 사망자까지 발생하였다. 체포된 이계성과 김관용, 허후득, 이봉하, 오인탁, 김옥제 등이 옥고를 치렀으며 유세근 등 많은 사람들이 태형을 받았다.

이와 같이 서산지역의 3.1운동은 유학자와 학생들이 주도한 곳이 많으며 주로 밤에 산에 올라가 횃불을 들고 만세시위를 한점이 특이하며 일제에 저항하다가 여러명의 희생자를 낳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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