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 둥지 튼 청춘남녀 '아트팩' 도전기
대흥동 둥지 튼 청춘남녀 '아트팩' 도전기
  • 월간토마토 김의경
  • 승인 2011.09.1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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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출근하는 백수래요", "저흰 꼭 살아남을 거예요"

그들을 만나러 간 곳은 오래된 식당과 갤러리가 있는 대전 중구 대흥동 어느 골목 지하. 같은 대학에서 세라믹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청춘남녀 넷이 <월간 토마토> 사무실과 아주 가까운 곳에 공동 작업실을 열었다는 제보를 받고 확인 차 나선 것이었다.

지난해 초 <월간 토마토>가 습격했던 ‘안개박사와 비밀도박’의 지하기지(안타깝게도 지금은 작업실을 정리한 상태다.)처럼 젊은 예술가 중에 경제적 부담 혹은 프로젝트, 친분관계 등 다양한 사정으로 공동 작업실을 마련하는 게 보기 드문 일은 아니다. 대학 시절부터 친했던 ‘아트팩’ 네 사람 역시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해나가고자 공동 작업실을 마련했다.

지하가 음습하다는 편견을 버려!

‘지하실’ 어감 탓인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조명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습하고 어두침침한 공간과 소주병이 두어 병 나뒹굴고 있는 콘크리트 바닥’이었다.

그런 이유로 스튜디오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 섰을 땐 적잖이 놀랐다. 깔끔히 페인트 칠한 하얀색 벽에 무지개 빛깔로 디자인한 단어 ‘art pack’이 무척 말쑥해서다.

반쯤 보이는 계단을 내려가는데 ‘그들’이 다리만 보고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라며 밝게 인사를 건넨다. 당황했다.

입구 바로 앞엔 본인 작품을 각각 오밀조밀 진열해 놨다. 제주 올레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작품부터 한글을 변형한 도자기, 귀를 형상화한 작품, 자화상이라는 예비군 미니어처까지 각자 개성이 확연히 드러나는 작품들이었다.

빠르게 작업실을 훑으며 급하게 마련한 다과용 탁자에 앉았다.

작업실에서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건 개인 작업 책상이다. 그 뒤로 벽 선반을 따라 도예에 필요한 여러 도구가 잘 정리돼 있고 네 명이 함께 쓰는 공간인 만큼 ‘따로 또 같이’를 많이 신경 쓴 듯 보였다.
그림, 그래픽, 제품 디자인 등 디자인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와 작업물, 마케팅까지 하는 만능 디자인꾼들이지만 ‘세라믹디자인학과’ 출신답게 주로 흙 만지는 일을 한다.

재학시절부터 킨텍스, 코엑스, 차 박물관 등에서 전시하고 판매전에 참가하며 실력을 쌓아온 팀이기도 하다.

“집에선 출근하는 백수래요”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열혈 청춘 남녀 넷이 모인 ‘아트팩’. 이들은 왜 하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대흥동에 둥지를 틀게 된 것일까?

“사실 처음엔 노은동이 동네가 깨끗하다고 해서 그쪽을 수소문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갤러리도 많고 예스러움과 현대적인 것이 섞여 있는 대흥동 분위기가 좋았어요. 작업하기에도 조용할 것 같고….” 남미은

“여긴 정말 재미있는 동네예요. 저녁 6시를 기준으로 낮과 밤이 너무 달라요. 밤이 되면 행인도 많아지고, 주말엔 이런저런 행사도 많고요. 서울로 치면 종로, 인사동, 삼청동을 교묘하게 섞어놓은 듯한 분위기랄까요. 무엇이 들어와도 어색하지 않은 동네예요.” 류승윤, 권기환

아는 사람이 없어 대흥동에 작업실을 마련하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는 이들은 지난 8월 13일에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조촐한 신고식을 치르기도 했다. 이로써 대흥동에 들른 행인에서 어엿한 새내기 주민이 됐다.

\업무지시를 내리는 상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일과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매일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면 어김없이 작업실 문을 열고 온종일 자기작업에 열중한다. 매일 정해진 장소에 나와 규칙적으로 일한다는 점에선 여느 평범한 직장인과 다르지 않다. 다만, 수치로 드러나는 작업성과가 없다는 것일 뿐.
그때 귀여운 단발머리를 한 막내 이지혜 씨가 짐짓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집에서는 출근하는 백수라고 해요. (웃음) 출근은 만날 하는데 회사처럼 월급 받아 오는 게 아니니까요.”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그에 따른 기대치는 점점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지금 아니면 앞으로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마음을 이끌었다. 원래 ‘좋아하는 일’이란 게 대부분 그렇다.

“넷 다 현실에 무뎌요. 베이고 힘들어도 묵묵히 해나가는 면이 있거든요.”

내내 말수가 적던 류승윤 씨 표현처럼 그런 묵묵함은 이들이 “흙 만지는 사람”이라서 인지도 모르겠다.
꿈만 좇기엔 이미 현실이 얼마나 질척거리는 지 깨달았고, 돈만 좇기에는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 많은 나이. 그런 만큼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민은 점점 더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것이고, 그럼에도 ‘좋아하는 일’을 택한 아트팩의 결정은 무척 신중한 동시에 충동적이었으리라 넘겨 짚어 본다. 그런 만큼 좋아하는 일을 수익과 부드럽게 연결해 오래도록 지탱해 나가는 방법을 찾는 게 아트팩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저흰 꼭 살아남을 거예요”

다행인 것은 혼자 머리 싸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격, 작업 성향은 확연히 다르지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그들은 이미 한 배에 탄 동지기 때문이다. 6년 동안 함께 부딪치며 쌓아온 신뢰와 확신이 몹시 단단하고 뿌리 깊다.
아트팩에게 ‘장밋빛 미래’란 바로 “총체적인 디자인 솔루션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작업에 순수한 열정을 쏟는 작가들 작업 마케팅을 대신해주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하는 것. 그런 뿌듯한 일이 기특하게 수익창출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제 주변에 재능 있는 친구들이 엄청 많아요. 그런데 생계 때문에 재능을 살리지 못하고 엉뚱하게 전혀 다른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요. 순수한 열정이 있는 친구 대신 말 잘하고 아부하는 사람들은 승승장구하고요. 그런 점이 안타까워 아트팩을 통해 작가는 작업에만 열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은 이루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결국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냉엄한 현실 속에선어수룩한 이상이며 빛바랜 진리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트팩이 끝까지 살아남길 바란다. 이런 그룹과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평범한 직장인이 10년 후 나도 한 번 들어가 볼까 기웃거릴 수 있는 끈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청춘답게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저희는 꼭 살아남을 거예요. 꼭 잘 돼서 더 많은 작가를 양성하고 아트팩 1호, 2호, 3호를 만들어 나갈 겁니다.”

▲ 사진 왼쪽부터 권기한, 남미은, 류승윤, 이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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