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비움이 만드는 창의도시 인천
시간과 비움이 만드는 창의도시 인천
  • 글 성수진 사진 이용원
  • 승인 2012.09.21 1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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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아트플랫폼

늘어선늘어선 붉은 벽돌 건물을 바라보면 잠시 다른 시공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오래된 느낌의 건물 사이 놓인 현대적인 조각 작품, 프로그램을 알리는 현수막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벤치 하나도 그냥 벤치가 아니다. 사람이 엎드린 모양을 한 벤치, 인형이 앉은 벤치를 보고 견학 온 아이들이 웃는다. 이곳은 인천아트플랫폼. 어떤 이가 와서 보더라도 단번에 이곳이 재미있는 공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비 움 으 로 채 우 는 아 트 플 랫 폼

하드웨어를 만들고 그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채운 방식도 아니고, 존재하는 소프트웨어를 담기 위해 하드웨어를 만든 방식도 아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말 그대로 예술 정류장이다. 사람과 기차 대신, 사람과 예술이 오고 간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개념으로 이해하면 쉽다. 애플사가 OS 관리를 하고, 어플리케이션은 사용자가 만들어 올리듯, 인천아트플랫폼은 인천문화재단에서 운영하고, 그 내용은 사람이 예술로 채운다. 그 내용이되는 사람과 예술이 매번 바뀌는 것이 핵심이다. 레지던시 프로그램, 전시, 공연, 학술 행사, 교육 프로그램, 아카이빙 프로그램을 다른 형식, 다른 내용으로 진행한다. 한 전시는 길어야 2개월, 레지던시는 3개월, 6개월, 1년을 주기로 입주 작가가 바뀐다. 플랫폼 개념에 맞게 그 안을 채우는 사람이 바뀌니, 자연스레 내용 또한 바뀐다. 아트플랫폼에 사람이 모이는 이유다. 찾을 때마다 새롭고 재미있으니 몇 번 왔던 이도 다시 찾는다.

인천아트플랫폼에 고정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건물뿐이다. 사무실, 전시장, 공연장, 자료관, 스튜디오, 게스트룸 등 2단지 13개 동마다 부여한 기능이 있지만, 그 기능에 매몰되지는 않는다. 자료관으로 쓰이는 D동에서 전시하고 싶은 작가가 있으면 하면 된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인천아트플랫폼 자체를 하나의 예술 공간으로 만들었다. 지금 인천아트플랫폼은 플랫폼 개념에 충실한, 비움으로서 풍요롭게 하는, 창의적 도시 인천을 만드는 공간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 과 거 ’ , 보 존 아 닌 공 존 으 로 살 아 나 다

인 천 아트플랫폼 1 3 개 동 은 개항기 건물과 1930~40년대 근대건축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역사적 보존 가치, 외장적 특성, 장소성, 노후도 등을 따져 리모델링할 곳은 하고, 신축이 필요하면 신축했다.
인천아트플랫폼이 자리한 해안동 일대는 서구 문화가 유입되었던 근대 개항장이었다. 개항장 일대 창고, 건물을 될 수 있으면 그 모습 그대로 활용했다. 역사성이 있는 공간을 보존하며 새로운 색을 입혀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

역사적 경관을 유지한 인천 아트플랫폼 2단지 13개동은 일대의 다른, 옛 모습을 간직한 건물들과 어울린다. 인천시역사자료관, 인천개항박물관, 차이나타운 등과 기능은 서로 다르지만, 과거 모습을 간직한 전체적 경관을 유지하며 해안동 일대의 고유한, 원도심 특유의 색을 낸다.

레 지 던 시 , 올 바 른 해 석 으 로 시 민 과 함 께 하 다

입주 작가들에게 작업실과 거주 공간을 제공하고, 홍보 지원, 프로젝트 수행 지원 등 소프트웨어적 지원도 함께 이루어지는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인천뿐만 아니라 전국, 다른 나라 작가들까지 참여하고 싶어 한다.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인천 작가의 지분을 보장해달라는 목소리도 있었고, 장르 별로 이권을 주장하기도 했다. 인천아트플랫폼을 작가의 전유물로 생각해 장기임대를 해 달라는 작가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인천아트플랫폼 운영위원회는 “인천아트플랫폼은 시민의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 주장은 단호하고도 옳았다.

작가들의 활동을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지원하는 이유는 이들 예술 활동의 공공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작가는 개인 스튜디오를 개방하여 시민이 찾아와 작업 과정을 볼 수 있게 하는 오픈 스튜디오를 해야 한다. 리서치 투어도 입주 작가의 의무다. 인천 곳곳을 돌아다니며 인천을 보고 듣는다. 그러면서 작가는 자연스럽게 인천을 작품에 담는다.

인천아트플랫폼 이승미 관장은 “인천아트플랫폼은 많은 예술가가 머무니 자연스레 예술학교가 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아트플랫폼을 운영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교육이다.”라며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시민에 기여하는 바를 이야기했다.

창 의 적 도 시 에 는 시 간 이 필 요 하 다

인천 아트플랫폼이 문을 열기까지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인천아트플랫폼 일대가 쇠락하기까지 과정이 길었던 만큼, 회복하기 위한 10년은 긴 시간이 아니라고 인천아트플랫폼 M.A.(Master Architect) 황순우((주)건축사사무소 바인 대표) 건축사는 이야기한다.

인천아트플랫폼을 계획하고 제안한 것의 시초는 민간 영역이다. 1996년부터 ‘해반문화 포럼’에서 구도심 형성과 활성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그리고 1999년 ‘도시건축 포럼’은 개항장 일대 도시재생 정책에 대해 연구하고 정책 제안했다. 플랫폼 개념은 아니었지만, 이때 제안한 것이 현재 인천아트플랫폼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제안은 민과 관의 제대로 된 역할 분담으로 빛을 보았다. 민간 영역의 제안을 공무원이 제도적 틀에 담았다.

인천시는 M.A. 제도를 통해 총괄 건축가를 임명해 무급인 대신 권한과 책임을 줬다. 황순우 건축사는 “인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뜨거운 응원과 시의 적당한 무관심이 인천아트플랫폼을 만드는 원동력이었다.”라고 회상한다. 그리고 이 원동력은 인천아트플랫폼을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할 수 있게 만들었다. 치밀하고 세세한 계획은 짧은 고민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인천아트플랫폼을 준비하는 데 10년, 제대로 자리 잡는데 또 10년. ‘10년’이란 단어는 많은 것을 함축한다. 충돌과 대화, 설득, 책임감, 고민 등이 쌓여 10년을 채웠다. 한 도시를 풍요롭게 하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인천아트플랫폼은 10년을 기다렸고, 또 10년을 기다린다.

인 천 아 트 플 랫 폼 M . A 황 순 우 건 축 사 인 터 뷰

Q. 지난번 대전근대아카이브즈 포럼에서 발제할 때 ‘면 단위지구단위 계획 수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이 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지구단위계획 수립은 자칫 사유재산 권리를 제약할 수도 있습니다. 주민 반발은 없었나요?

A. 문화지구로 지정하기 전에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해 결정했어요. 문화지구를 먼저 만들면 땅값이 오르길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심이 높아지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땅값과 임대료 등이 오르죠. 그러면 지구단위계획을 관철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구단위계획을 먼저 수립하는 것이 좋아요. 이 지역은 다행스럽게도 이미 다양한 규제사항이 있었고 쇠락할 대로 쇠락해 토지주나 건축주가 자포자기한 상태였죠. 무엇이든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했기 때문에 별 반발은 없었어요. 결국, 오래 버티는 쪽이 이기게 되더라고요.

Q. 인천아트플랫폼은 흔히 말하는 좁은 의미의 예술인이 아닌 건축가의 눈으로 만들었습니다. 반대의 소리는 없었나요?

A. 미술계에서 욕을 하기도 했죠. 시립미술관이 없는 인천에서 아트플랫폼이 시립미술관 대용이라는 소문이 돌아서 더 그랬을 거예요. 오해 때문에 미술계와 사이가 안 좋았던 적도 있었지만, 아트플랫폼이 의도대로 잘 되고 나서는 미술계 인사들도 좋게 평가합니다.

Q. 인천아트플랫폼을 계획하면서 인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인천은 어떤 도시인가요?

A.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니 도시마다 특성이 있다는 것이 잘 와 닿습니다. 다른 도시와 비교했을 때 인천은 역사적, 지역적 특성 때문인지 개방적입니다. 도시의 개방적인 성격이 아트플랫폼 만드는 데 영향을 주고, 도움도 됐습니다.

Q. 인천아트플랫폼을 계획하고 준비한 사람으로서 현재 인천아트플랫폼 운영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 90%가 의도대로 이루어졌습니다. 10% 덜된 것은 아카이브 구축입니다. 굉장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본 골격을 갖추고 누구나 자료를 올리고 리뉴얼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지금은 여력이 부족합니다.

Q. 인천아트플랫폼,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요? 우려하는 점이 있다면요?

A. 제가 두려워하는 건 아트플랫폼이 기념품을 사려는 관광객이 모이는 곳이 되는 거예요. 예술가들이 더 모여들어서 지금 아트플랫폼이 그 성격을 더 넓게 가졌으면 좋겠어요. 근처 여관이나 빈집을 시가 사거나 장기 임대해서 작가들에게 싸게 공급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아트플랫폼으로 인프라는 충분히 되어 있으니까요.

Q. 준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M.A.로서 오랜 시간 인천아트플랫폼에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A. 그렇게 오래 집중해서 하기가 쉽지 않죠. 제가 그때 몸이 안 좋아서 다른 일은 못하고 아트플랫폼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요. M.A.로서 책임감 역시 컸습니다. 내가 사는 곳을 내가 설계하는 것에 애정도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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