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옆 포장마차 주인 ‘송봉용’ 씨
도청 옆 포장마차 주인 ‘송봉용’ 씨
  • 글 이용원 사진 성수진
  • 승인 2013.04.2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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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 별다를 것 없는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 두 시, 알람이 울린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자기 전 다듬어 두었던 재료를 챙긴다.

굵기는 어른 엄지손가락만 하고 길이는 손바닥만 한 김밥이지만 들어가는 재료가 솔찮다. 당근, 우엉, 단무지 등을 볶아 밥 위에 올려 놓고 둘둘 말아 김밥을 싼다. 아침에 팔 국수를 삶아내고 가게에 가져갈 튀김 재료와 호떡 반죽도 잘 챙기니 새벽 네 시가 조금 넘는다. 남편과 이른 아침을 함께 먹고 집을 나선다. 꽃샘 추위가 남았겠지만 새벽공기에서도 봄 향기가 묻어난다. 손수레에 재료를 가득 실어 집 앞 골목을 빠져 나온다.

▲ 도청 옆 포장마차 주인 송봉용씨
다섯 시 십분, 포장마차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아직은 어둡다. 주름 천막을 챙겨 가스 설비가 달린 수레 위에 펼치고 가스 불 세 곳에 모두 불을 올린다. 가스가 생겨 그나마 편하다. 가스를 설비하기 전에는 연탄을 땠다. 집에서 가져온 밑불로 연탄 화덕에 불을 넣었다. 마음이 아무리 급해도 연탄이 활활 타오르기 전에는 속수무책이었던 시절이다.

포장마차에는 별도로 메뉴가 붙어 있지도 않고 이름도 없다. 그래도 굳이 이름을 찾자면 ‘뎀벼락’이나 ‘벼람박’이다. 충청남도경찰청 긴 담에 기대 포장마차가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이 사실도 포장마차에 찾아온 손님이 다른 사람과 전화통화하는 소리를 듣고 알았다.
“아, 나 지금 벼람박에 있다니까. 이리로 와.”

여섯 시가 가까워지면서 손님이 하나둘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온다. 사무실에서 먹을 김밥을 포장해 가고 뜨끈한 어묵 국물에 국수와 어묵 한 개를 넣고 말은 물국수를 후루룩후루룩 먹는다. 김치와 김, 양념간장을 올린 국수는 추운 아침 언 몸을 녹이거나 전날 늦게까지 마신 속을 풀어주는데 아주 그만이다.

전문적으로 각종 튀김과 호떡 반죽을 대주는 곳이 있지만 받지 않고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든다. 쉬는 주말에 일주일 동안 팔 재료를 사서 준비한다. 직접 할 수 있는데, 굳이 다른 곳에서 만든 것을 가져다 쓰고 싶지는 않아서다. 고구마튀김도 채를 썰어 직접 튀겨 내놓는다.

오렌지색 포장 사이로 추적추적 봄비가 내린다. 비가 그치면 제법 매서운 꽃샘추위가 몰려온단다. 꽃샘추위가 아무리 매서워도 봄은 온다. 봄이 오면 ‘호떡’은 들어가고 찹쌀도너츠와 부침개 등 새로운 품목이 선을 뵌다. 역시 모두 직접 만든다.

충남도청이 내포 신도시로 이사 가기 전에는 아침마다 정신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시커먼 양복 입은 사람 한 무리가 포장마차 주변에 몰려 있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진풍경이었다.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 중에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찾아와 묻는 이들도 있었다. ‘도대체, 이곳에서는 무엇을 팔기에….’

충남도청 옆에 붙어 있는 충남지방경찰청 직원들과 전, 의경도 단골이었다. 포장마차가 붙어 있는 담벼락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그 담 너머에는 전, 의경이 직접 밥을 해 먹는 식당 건물이 붙어있었다. 조금 소리만 크게 지르면 들릴 정도였다. 고향에 어머니라도 생각났는지 식당에서 간간이 ‘누룽지가 생겼다.’라며 건네주는 청년도 있었고 급할 때는 소리 질러 식당에서 기름도 빌려 쓰곤 했다.

지방경찰청에서 일하는 전, 의경 숫자도 줄고 도청이 이사 가면서 예전처럼 손님이 줄을 서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른 아침 포장마차를 찾는 이들을 생각하면 문 여는 시간을 늦출 수 없다. 월요일에는 통근 버스를 타고 내포신도시 신청사로 출근하는 충남도청 공무원이 종종 찾는다. 반가운 얼굴이 대부분이다. 아직도 이곳 음식 맛을 잊지 못해 애닳는 동료 직원을 위해 이것저것 한 보따리 챙겨 버스에 오른다. 도청에서 출발하는 통근버스가 운행하는 한 계속 이어질 풍경이다.

도청 이사가 가까워지면서 단골 중에는 농담 반 진담 반 ‘내포 신도시에 같이 가자.’라고 졸라대는 이도 있었다. 여전히 자식 뒷바라지가 급했다면 따라나섰을 지도 모를 일이다. 벌이는 덜하겠지만, 도청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포장마차를 찾는 오랜 단골을 등지고 떠날 수는 없다.

이 포장마차에서 눈이 맞아 결혼한 커플도 있었다. 10여년 전 일이지만 매일 포장마차에 들렀던 충남경찰청 여직원과 전화국 청년이 사랑을 싹틔워 결혼한 것이다. 주인장은 그 사이에서 쪽지를 건네주는 역할을 맡았다. 이제 아이들을 모두 키우고 시집 장가 보냈으니 돈은 그렇게 많이 벌 필요가 없다. 부부가 쓸 정도만 벌면 된다. 30년 넘게 한 자리 지키며 이런저런 정이 쌓인 사람들과 알콩달콩 수다 떨면서 말이다.

송봉용(59) 씨가 포장마차를 시작한 것은 29살 때다. 22살에 큰딸을 낳고 내리 딸만 둘을 더 낳았다. 그 뒤 태어난 막내아들이 채 100일도 되기 전이었다. 27살 즈음이었으니 어느덧 포장마차 문을 연 뒤 30년이 훌쩍 흘렀다. 장소도 지금 골목에서 상황에 따라 위아래로 왔다 갔다 했을 뿐, 다른 곳으로 옮긴 적도 없다.

포장마차를 열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반찬값이라도 벌어볼 심산이었다. 막내를 등에 업고 고만고만한 나머지 아이들은 포장마차를 놀이터 삼았다. 주름천막 대신 큰 파라솔 한 개가 해를 가리고 비를 막아주었던 유일한 도구였다. 팔다 남은 튀김은 집에 가지고 가 탕수육 소스를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먹었다. 언제던가 중국집에서 먹어보았던 탕수육 맛을 기억했다가 나름대로 만든 소스였다. 음식 손맛은 타고난 모양이다.

송봉용 씨가 태어난 곳은 대전 중구 목동초등학교 뒷마을이다. 자라기는 은행동에서 자랐다. 남편과는 동네에서 만났다. 송 씨 나이 열아홉 살에 한 살 많은 지금 시누이와 어울려 놀다가 그녀의 오빠를 만난 거다. 남편과 만나 결혼한 후 살림을 차린 곳은 선화동이다. 나고 자라고 신혼살림을 차려 지금까지 살아온 곳이 모두 거기서 거기다. 대전이 고향인 토박이지만 이 일대를 제외한 대전 다른 곳은 잘 모른다.

결혼한 직후 남편은 건설 현장에서 일했는데 몸이 좋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고엽제 피해자였다. 다리가 불편하고 피부에 염증이 생겨 일하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고엽제 피해를 국가가 인정하고, 베트남전 참전으로 국가유공자도 돼 아이들 대학 등록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일상적인 삶을 꾸리는 일은 온전히 송 씨 몫이었다. 반찬값이나 벌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 어느새 여섯 식구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아침에 등교를 챙겨주지 않아도 될 때부터 포장마차 영업시간을 아침 5시 10분으로 당겼다. 문을 닫는 시간은 저녁 여섯 시다. 집에 돌아가면 새벽에 일어나 김밥 쌀 재료를 챙겨 놓고 아홉 시나 되어야 이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하루 수면 시간은 다섯 시간 남짓.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쉬고 한 주에 닷새는 대부분 그렇게 보낸다. 수면 시간만 놓고 보면 산중 깊은 곳에서 수행하는 스님의 삶과 닮았다.

낮시간에 손님이 없을 때 졸기도 한다지만 한 평도 안 되는 그 좁은 공간에서 추위와 더위와 외로움과 싸우며 보내는 시간이 만만찮을 텐데, “재미있고 행복하다.” 송봉용 씨 표정을 보면, 정말 재미있고 행복한 ‘웃음’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포장마차 안에서 송 씨는 늘 웃고 있다. 대형 프렌차이즈 점원이 보여주는 교육 받은 웃음과는 한눈에 보아도 확연히 다른 살아 있는 자연스러운 웃음이다. 그렇게 재미있는 삶은 우울하고 괴롭고 아플 기회조차 주지 않는단다. 허리도 어깨도 팔도 아프지 않다. 포장마차를 찾는 오랜 단골과 이런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사연을 듣고 노래를 따라부르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다.

장성한 자식들은 어디 가게라도 얻어 번듯한 식당을 하자지만 이제 와서 새롭게 무얼 하는 것도 마뜩잖다. 하루 장사가 끝나면 포장마차 맞은 편에 세워 놓은 작은 손수레에 챙겨가야 할 물건을 챙겨 싣고 수십 년 동안 오간 골목을 따라 집에 돌아간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 김밥 쌀 재료를 거듬거려 놓고 잠자리에 든다.

매일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그렇게 하루를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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