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수법을 이용해 거액의 수표를 위조 복제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은 수표 유통의 헛점을 노려 소액권을 수백배의 거액으로 위조한 뒤 상품권을 사들여 환전하는 등 전문 금융지식을 갖춘 지능범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이한 수표 위조 방법
대개 수표나 지폐의 위조 수법으로는 칼러 복사기나 스케터에 의한 복제 방법이 가장 일반적이다.
하지만 경찰에 붙잡힌 42살 이모씨는 모두 진짜 수표의 금액과 일련번호만을 고쳐 금액을 수백배로 부풀리는 수법을 이용했다.
우선 위조범 이씨는 현금 3천만원 가까이를 밑천으로 마련해 두었다.
이 돈으로 2천3백만원짜리 비정액권 수표 1장을 발급받았고 이어서 10만원대 수표 여러장을 또다시 발급받았다.
10만원 정액권으로 하지 않고 13, 4만원 등 비정액권을 발급받은 이유는 위조하기에 용이했기 때문이다.
비정액권 수표, 그러니까 흔히 백지 수표라 불리는 이 수표는 대부분의 금융기관에서 그 금액의 표시가 일종의 숫자 도장에 금액 표시를 조합해 찍어주는 수기작업으로 이뤄진다.
이씨는 이렇게 발급받은 10만원대 수표의 금액을 지워서 2천3백만원으로 표기해 인쇄하고 역시 수표의 일련번호를 먼저 발급받은 2천3백만원짜리 일련번호에 맞게 수정했던 것.
이씨가 2천3백만원짜리 수표를 그대로 복사하지 않고 이처럼 복잡한 방법을 이용한 이유는 간단하다.
수표를 위조한 사실이 곧바로 탄로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껏 컬러복사기나 스캐너에 의한 복사는 인쇄 품질이 아무리 정교하다 하더라도 용지 자체가 달라서 일반인들도 민감한 사람이라면 종이의 질감 차이를 어느정도 구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액권이기는 하지만 진품 수표 용지에 금액 등을 수정하는 방식이다 보니 일반인들이나 금융기관에서는 육안으로는 진위여부를 식별하기가 어렵다.
위조 수표로 상품권 사들여 현금으로 환전
용의자 이씨는 이렇게 위조한 수표를 어떻게 사용했을까?
이씨는 위조한 수표를 곧바로 현금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워낙 고액권이다 보니 한번에 현금으로 환전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유명 백화점 등의 상품권을 매개 수단으로 사용했다.
백화점 상품권 등은 비교적 대량 유통된다는 점에서 수천만원 어치의 상품권을 매입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또 이같은 상품권들은 시중에 있는 대부분의 환전소에서 수수료 몇 퍼센트만 떼면 손쉽게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잇점이 있었다.
이씨는 위조된 수표를 이용해 지난 4월 29일 전국의 유명 백화점 여러 곳에서 상품권 수천만원 어치를 매입한 뒤 곧바로 현금으로 환전했다.
위조된 수표는 이날 은행으로 취합되지 않고 평일인 월요일부터 서서히 매입됐는데 이 과정에서 위조 수표 여부가 밝혀진 것.
이때부터 경찰은 비슷한 범행이 또 일어날 것으로 보고 백화점 등 주변에서 감시망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지난 6월 4일 대전의 한 백화점에서 또 다시 2천3백만원 짜리 수표를 내밀며 상품권을 구입하려다 경찰에 적발됐다.
신분 노출 우려, 심부름꾼 이용
용의자 이씨는 처음부터 신분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다양한 심부름꾼들을 범행에 이용했다.
2천만원 이상의 거액 수표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은행에 신분증을 제시해야만 하지만 용의자는 이렇게 되면 차후에 경찰에 추적을 받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처음부터 택배회사 직원이나 택시 기사에게 일정액의 수고비를 지급하며 범행에 이용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하지만 경찰은 현재까지 이들 심부름꾼에게서는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씨의 심부름을 맡았던 이들 역시 단순히 현금을 수표로 바꿔주는 심부름이 범죄가 될 줄은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라고 한다.
이씨는 물론 상품권을 구매하는 과정과 이 상품권을 환전소에서 환전하는 과정까지 자신이 직접 행동하지 않고 모두 심부름꾼들을 이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휴일엔 수표 확인이 허술하다는 점 악용
그런데 어떻게 위조 수표가 버젓이 유통될 수 있었을까?
위조 수표는 유통되면 바로 당일 적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수표를 받은 상점 등에서 은행이 문을 여는 평일 곧바로 현금으로 환전하는 등 수표가 다시 은행권으로 유입되기 때문이다.
또 수표가 곧바로 유입되지 않더라도 수표 감별기에 넣기만 하면 수표의 바코드나 식별 부호 등을 통해 곧바로 진위여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은행이 문을 닫는 주말이나 휴일에는 사정이 다르다.
일단 수표가 곧바로 은행권으로 유입되지 못하고 수표 진위 확인 역시 전화 ARS에만 의존해야 한다.
ARS는 수표의 일련번호와 금액만 일치하면 문제 없는 수표로 확인된다는 점이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수표를 받은 백화점측에서는 꼼짝없이 속아 넘어갔던 것이다.
이씨는 이처럼 고도의 금융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가령, 정액권이 아닌 비정액권은 금융기관에서 수기 작업으로 금액을 표시한다는 점.
또 2천만원 이상의 고액권은 아무리 현금을 가져가더라도 신분증을 확인한다는 점.
이밖에 주말과 휴일에는 수표 확인을 ARS에만 의존한다는 점과, 이 ARS 수표 확인 과정의 헛점 등을 사전에 알았다는 점 때문이다.
수표 전문 위조 조직 및 공범 존재 가능성 높아
이씨가 처음 수표를 발급받은 2천3백만원짜리 진품 수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미 사용됐을 수도 있지만 정확한 위조 규모가 어느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또 진품 수표를 발급받은 금융기관이 한 곳 뿐이 아니고 여러 은행들에서 몇차례 더 이뤄진 점으로 볼 때 대략 10억원에 가까운 규모를 추산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수표의 금액과 일련번호를 지우는데 사용된 약품이나 새 금액을 기입하는 데 사용된 장비 등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경찰은 아마도 이같은 수표 위조가 전문 조직에 의해 이뤄진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또 이같은 신종 수법의 범행이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씨의 공범조직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대전CBS 천일교 기자 ig1000@cb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