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확장
[충청뉴스 유규상 기자] 30여 년간 지방행정의 현장을 걸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우리의 지방자치는 정말 자치인가, 아니면 중앙이 허락한 자율인가?”
지방정부는 여전히 중앙의 그림자 아래 있다. 사업 하나를 추진하려 해도 중앙의 공모를 기다려야 하고, 예산 한 줄을 바꾸려 해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지역의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지방에 있는데, 결정권은 언제나 서울에 있다. 지방의 한계는 능력이 아니라 권한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지방자치는 행정의 효율이 아니라 시민의 주권을 실현하는 일이다. 행정이 시민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지역의 방향을 정해야 한다.
논산시 부시장으로 있을 때 추진했던 주민참여형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나는 그 본질을 실감했다. 행정이 한 발 물러서자, 시민들이 마을의 색깔과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그때 깨달았다. 행정이 물러설 때 비로소 자치가 시작된다는 것을.
그러나 현실은 아직 멀다. 지방은 예산·인사·정책의 세 축이 모두 중앙에 묶여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실행력을 갖기 어렵다. 지방분권은 단순한 업무 이양이 아니다. 재정·인사·정책의 자율권이 함께 보장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중앙정부는 감독자가 아닌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모든 지역을 똑같이 만들려는 균형발전이 아니라, 각 지역이 다르게 잘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분권의 모습이다.
나는 공직생활 내내 느꼈다. 행정의 한계는 제도가 아니라 정치의 부재에서 온다는 것을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정치가 움직이지 않으면 시민의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제 지방행정은 더 이상 홀로 설 수 없다. 시민의 정치와 만나야 한다. 행정이 제도를 세운다면, 정치는 사람의 삶을 세운다. 그 만남이 바로 지방자치의 완성이다.
지방자치는 중앙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싸움이 아니다. 시민이 스스로 지역의 미래를 선택하는 민주주의의 확장이다. 지방의 길은 행정의 길이 아니라 사람의 길이다. 이제 지방자치는 중앙의 손이 아니라, 시민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