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이 아닌, 자원으로 공간을 바라보다
20대 전부를 김덕수패사물놀이에서 사무국장으로 보내고, 30대 절반을 공연?음반제작 벤처기업가로 활동하던 이선철 대표. 그가 폐교에 들어온 건 2002년이다.
“주변에서는 저의 귀농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해주려고 하는데, 처음부터 문화기획자로 농촌을 바꿔보려 했던 건 아니에요.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건강이 안 좋아서 귀농했던 것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일을 벌였던 건 아니었다. 그저 교실 한 칸만을 생활공간으로 마련했다. 그 공간에서 유유자적하며 자연친화적인 생활을 영유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원도지사가 이선철 대표를 찾아왔다. ‘서울에서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던 사람이 평창 산골마을 폐교에 들어와 지내고 있다.’라는 소문만 듣고 불쑥 찾아왔었다고 한다.
“그때 강원도지사가 폐교를 활용해 마을을 바꿔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평창군이 강원도와 함께 공동 지원으로 폐교를 매입하고 리모델링 해준 거죠. 이때 위탁운영을 저희한테 맡긴 거예요. 감자꽃스튜디오는 그 과정에서 만든 거고요.”
2004년, 그렇게 감자꽃스튜디오가 탄생했다. 각 교실은 사무실, 감자꽃책다방(북카페), 노산분교박물관, 이곡리씨어터(마을극장), 이종욱키친(식당?휴게공간), 마을센터 등으로 새롭게 바뀌었다. 그때부터였다. 감자꽃스튜디오를 중심으로 강원도 평창군 평찹읍 이곡리는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감자꽃스튜디오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이선철 대표는 한 마디로 ‘오바’하지 않았다. 엄청난 사명감을 가지고 마을 주민들을 한 데 모아 공동체의식을 이끌어 내려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외부인에게 쉽게 마음 내주지 않는다는 걸 이선철 대표는 잘 알았다. 지역 정서의 현실과 한계를 인정한 가운데, 주민과의 교류는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지역생태계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누구나 문화생활 하길 원하는 건 아니에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이 있는가하면 ‘먹고 살기 바쁜데 뭔 공연이야?’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감자꽃스튜디오가 ‘스튜디오’여서 주민 중에는 사진관으로 알고 오는 분도 있어요.
한 번은 어르신이 오셔서 사진 찍으러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럼 찍어드리면 되는 거예요. 그걸 가지고 몰라준다고 좌절할 필요 없다는 거죠. 제가 이 마을에서 10년 넘게 살았는데, 저를 보면 지금도 ‘자네가 무슨 일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어요. 그런 분들을 처음부터 억지로 설득하려할 때 서로 지치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천천히 시작했던 거죠.”
이후 교사, 공무원, 마을 주민에게 서서히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한 거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이렇게 형성한 네트워크와 인적자원을 토대로 마침내 절기별 마을 축제를 열 수 있었다.
봄에는 봄소풍(공연축제), 방학에는 분교캠프(방학캠프), 가을에는 가을운동회(걷기축제), 겨울에는 성탄극장(주민축제). 축제는 옛 학교에서 절기별로 진행했던 행사를 현 트렌드에 맞춰 재구성했다. 물론 그 안에 담긴 정서는 옛날과 다르지 않다. 봄소풍이나 가을운동회하는 날이면 마을 주민 모두가 참여했던 그 옛날 분위기처럼 모든 행사는 마을 주민이 함께 준비하고 모두가 참여한다.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과 마을 축제를 반복하며 주민에게도 문화체험과 예술 활동이 일상화된 거다. 주민끼리 동아리를 만들고 감자꽃스튜디오에서 연습하고 마을축제에서 마음껏 실력발휘를 한다.
지역재생의 목적은 지역마다 제각기다. 추구하는 목표가 문화적 가치일 수도 있고, 경제적 가치일 수도 있다. ‘마을 주민의 일상적 문화 활동을 통한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라는 목적에서 봤을 때, 감자꽃스튜디오는 지역재생의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였다면 사람들은 감자꽃스튜디오를 주목하지 않았을 거다.
“지역을 재생하는 데 있어서 어떤 문화예술기획자도 혼자서 모든 걸 할 순 없어요. 필요하다면 공적자금을 적절히 활용해야죠. 감자꽃스튜디오도 마찬가지였어요. 인프라 구축과 초기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은 공적자금을 받았었죠. 중요한 건, 그 다음이에요.”
이선철 대표가 감자꽃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절대 양보하지 않는 경영철학이 두 가지 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공공성이다.
“일단 감자꽃스튜디오는 공간에 관한 대가는 절대 안 받아요. 여기는 공적자금으로 탄생한 공적공간이니까요. 활동에 따른 수익도 마찬가지죠.”
그렇다고 감자꽃스튜디오가 공공성만 추구하는 건 아니다. 이선철 대표가 추구하는 두 번째 경영철학, 그건 지속가능성이었다.
“공적자금으로 탄생한 단체에 언제까지 공적자금을 투여할 순 없는 거예요. 감자꽃스튜디오도 마찬가지고요. 그 단체에 지속가능성이 없다면, 아무리 공적자금을 투여한다고 한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거죠. 결국 공공성을 가진 단체라도 지속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감자꽃스튜디오는 꾸준히 수익모델을 연구하고 창출한다. 이때 핵심은 ‘Case is the money'다.
이렇게 입증한 ‘사례’를 통해 감자꽃스튜디오는 문화예술교육, 문화공간 조성, 축제 기획, 재래시장 활성화, 생태관광과 마을계획 등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컨설팅?디자인 프로젝트?자문?기획 단체로 참여한다. 정말로 ‘케이스’가 ‘돈’이 되는 것이다.
지역재생은 크게 두 가지 목적을 설정한다. 앞서 언급했듯 문화활성화 또는 시장활성화, 혹은 두 가지 모두 일 수도 있다. 감자꽃스튜디오는 그런 측면에서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성공적으로 이행했다. 더불어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지속가능성까지 갖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선철 대표는 감자꽃스튜디오를 성공사례로 보는 외부시선이 부담스럽다고 한다.
“지역마다 추구하는 목표, 가지고 있는 자원, 생태계 모두 달라요. 지역재생하는 데 있어 감자꽃스튜디오의 모델을 그대로 가져다가 써서는 안 된다는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지역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한 가지 원칙이 있어요.”
이선철 대표는 이것을 ‘정치적 센스’라고 표현했다. 모든 일은 결국 관계에서 시작한다는 거다.
“기획자가 가장 해서는 안 될 행동이 공무원을 적대시하는 거예요. 기획자 입장에서 공무원은 함께 해야 할 중요한 사업 파트너예요. 적대시해서 좋을 게 전혀 없다는 거죠. 공무원은 공적자금을 투여했을 때 가시적인 성과를 원하잖아요.
그럼 만들어주는 거예요. 감자꽃스튜디오에 1년에 몇 명이 방문했는지, 이들이 지역사회에 얼마만큼 소비했는지, 또 감자꽃스튜디오가 매체나 미디어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 이를 통해 지역사회에 관한 홍보효과는 얼마만큼 있었는지, 데이터화해서 수치로 보여주는 거죠.”
지역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감자꽃스튜디오는 마을주민에게 많은 걸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수익은 철저히 양보한다.
“그래서 정치적 센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데 참 어려운 거죠. 결국 각자의 문화를 이해해주는 가운데 기획자, 행정가, 지역주민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한다는 거죠.”
이선철 대표는 공자의 근자열원자래(近者說遠者來)라는 말로 감자꽃스튜디오의 모든 성공요인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도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