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단계 보고 줄이고 유연근무 90% 육박
- 밥상에서 피어나는 수평적 소통
- 실무자들의 자발적 ‘페인포인트 맵’
[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 결재판을 들고 간부 집무실 앞 복도에 길게 줄을 서서 대기하는 공무원들의 모습.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 위치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청장 강주엽, 이하 행복청)에서는 이제 찾아보기 힘든 과거의 풍경이 되었다.
대통령 세종집무실 설치와 국가상징구역 조성, 국립박물관단지 건립 등 대한민국 행정수도의 뼈대를 세우는 고도의 복합 과업을 수행하는 이곳. 행복청은 최근 조직문화의 근본적인 혁신을 통해 행정수도 건설의 전문성과 업무체계의 민첩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일하는 문화의 재설계'가 한창인 행복청의 변화된 현장을 직접 들여다보았다.
행복청이 추진해 온 혁신은 단순한 슬로건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데이터'로 증명되고 있었다. 지난 2023년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선제적인 조직문화 진단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공직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던 ‘근무시간 외 업무 연락’과 ‘불필요한 야근’ 경험도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시차출근과 재택근무를 포함한 유연근무제 사용률은 무려 90%에 육박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공직사회의 불합리한 관행 중 하나인 ‘간부 모시는 날’을 완전히 지워낸 자리에 들어선 유쾌한 소통 실험들이다.
「운수대락」(運數大樂)은 추첨을 통해 선정된 부서에 점심 도시락을 지원하는 이벤트로, 격식 없는 부서 내 소통을 장려한다.
「밥상연대」는 나이나 직급이라는 문턱을 넘어 학번, 띠, MBTI 등 공통의 관심사와 키워드로 묶인 직원들이 모여 자유롭게 소통하는 자리다.
현장에서 만난 한 신규 임용 공무원은 "선배 공무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처음엔 긴장감이 컸는데, MBTI라는 공통분모로 모인 '밥상연대' 점심 식사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조직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격식 없는 대화가 실무 협조로 이어질 때 소통의 힘을 실감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자체적인 노력과 축적된 데이터는 올해 정부가 도입한 ‘범정부 조직문화 5대 실천과제’를 행복청 맞춤형으로 안착시키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신규직원 기피업무 전가 금지, 체계적인 업무 인수인계, 과잉 의전 금지 등은 이제 행복청 내에서 거스를 수 없는 기본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행복청 조직 혁신의 심장부에는 다양한 직급과 부서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혁신 네트워크 ‘해피브릿지(Happy Bridge)’가 있다. 이들은 그간 ‘갑질사례 모음집’ 제작, ‘생성형 AI 활용 행정실무 워크숍’ 개최 등 실무에 즉각 적용할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들을 내놓으며 조직의 체질 개선을 주도해 왔다.
이들의 혁신을 향한 열정은 사무실 밖에서도 뜨겁게 이어졌다. 지난 7월 2일부터 3일까지 이틀간, 핵심 사업 및 기획 부서 실무자 13명은 부산 워케이션 거점센터로 향했다. 일과 휴식의 균형 속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하기 위한 ‘워케이션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이 자리에서 해피브릿지 구성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행복청 내부의 구체적인 불편 요소를 시각화한 ‘행복청 페인포인트맵(Pain Point Map)’을 도출해 냈다.
아울러 온나라, e-사람 등 공직사회의 복잡한 최신 행정 시스템 정보와 실무 노하우를 집대성한 ‘신규직원 가이드북’ 리뉴얼 작업에도 본격 착수했다. 형식적인 회의실을 벗어나 리프레시된 공간에서 실질적인 제도 보완책을 이끌어낸 순간이었다.
행복청이 보여주는 혁신의 종착지는 결국 ‘업무의 효율성과 전문성 극대화’다. 이를 위해 행복청은 복잡한 다단계 중간보고 프로세스를 과감히 걷어냈다.
구두로 요점만 명확히 전달하는 '메모보고'와 사전에 내용을 공유하는 '서면보고' 문화를 기본값으로 설정했다.
보고를 위해 간부실 앞에서 마냥 대기하던 불필요한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자, 직원들은 도시계획 수립과 광역교통망 확충 등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본연의 과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강주엽 행복청장은 "우리가 지향하는 혁신은 단순히 보기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불합리한 관행을 철저히 청산하고, 전문성과 민첩성을 겸비한 스마트한 행정조직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행정수도 완성을 한 발 앞당겨 선도하겠다"고 다짐했다.
관행이라는 낡은 옷을 벗고 실질과 소통이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은 행복청. 스마트한 조직문화가 만드는 유연하고 기민한 행정력이 앞으로 완성될 행정수도 세종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