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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도묵 경동기술공사 대표이사 | ||
이번 도청사건이 우리의 가슴에 남긴 상처는 실로 크다. 그래도 정부가 거짓말이야 하겠는가 하며 신뢰하며 살아왔는데,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고백하고 반성하기 위해 석고 대죄한 것이 아니고, 밖에서 일이 불거지자 마지못해 털어놓고 말았다는 데에 더욱 마음이 상한다.
정부 차원의 일처리는 알아서 잘 하리라 믿는다. 다만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불신의 사회가 되었는지 아픈 마음을 접어둘 수가 없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이야 어떻든 괜찮다는 사고가 빚어낸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무슨 일이든지 과정이 중요할진대, 언제부터인가 결과에만 매여 살아온 것은 아닌지.
인간의 탈을 쓰고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그 가름을 진작에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적어도 남의 사적인 생활을 암암리에 들여다보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그 짓을 하고 그것을 빌미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했다니, 해도 해도 너무 했다.
왜 우리의 사회는 이렇게 망가져가고 있을까. 하나의 행동을 해도 남에게 배려하던 조상들의 슬기는 모두 어디 가고, 오로지 자신의 이득만을 추구하는 서양의 개인주의가 들어와 우리의 사회에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기 때문일까. 설령 그렇다 쳐도 그 서양의 문화에 대처하지 못한 것은 우리들이다. 또 하나의 목표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의 조급성 탓도 있을 것이다.
매일 단추 하나만 누르고 아파트의 고층을 오르내렸다. 밥이 뜸 들기를 기다리지 못하여 라면이나 후르르 끓여먹고 살아온 우리의 생활 습관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것은 우리의 사회에 언젠가부터 도덕이 무너지고 있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더하다.
도덕이 무너진 사회는 생명이 없다. 도덕이 무너져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사회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이웃과 이웃이 불신하고, 직장인이 동료를 불신하고, 남편이 아내를 불신하고, 부모가 자식을 불신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전화를 하다가 잡음만 들려도 불안하여 수화기를 내려놓고 달려가야 하고,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하다가도 도청이 불안하여 필답을 하고, 필답을 하다가도 불안하여 주위를 둘러보며 몰래카메라를 점검해야 하는 우리는 한마디로 불행한 국민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이 불신을 불식시키고, 신뢰의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가 앞장서서 대책을 내놓아야 하고, 전 국민이 동참하여 뼈를 깎는 아픔을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이룩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도덕 재무장 운동이라도 벌려야 한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적 생활 패턴을 되찾아 신뢰가 둥지를 트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진정 개인도 있고, 국가도 있는 나라의 국민이 되고 싶다.
강도묵 경동기술공사 대표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