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4월 북파공작을 목적으로 창설된 실미도 부대에서 4명의 공작원이 적법한 절차없이 부대내 상부의 지시에 따라 살해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실미도 사건' 진상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부대 창설 뒤 석달만인 1968년 7월 고된 훈련 등으로 탈영을 시도한 이부웅, 신현준씨 등 2명의 공작원이 몽둥이 등을 동원한 구타로 숨졌다.
또 1970년 8월에는 부대 기간병에게 반말 등 `하극상'을 했다는 이유로 윤태산씨가 역시 실미도부대장과 교육대장의 지시를 받은 동료 공작원들에 의해 살해됐다.
또 `무의도 강간사건' 범인인 강찬주도 부대 상부의 지시에 따라 1970년 11월 흉기로 살해됐다.
군 과거사위는 이와함께 총 31명의 공작원들은 사형이나 중형 등을 받은 특수범이나 현역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이었다고 밝혔다.
또 모집관들은 훈련 후 장교임관이나 미군부대 취직 등 당초부터 지키지 못할 약속을 제시해 구두계약 형식으로 부대원들을 모집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공작원들에게는 `김일성 거처습격' 등의 대북 특수임무가 부여됐지만 모집 당시 북파공작 임무의 위험성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지를 받지 못했으며 3년4개월간 무인도인 실미도에 강제로 격리돼 사실상 구금상태에 있었다고 과거사위는 설명했다.
과거사위는 1971년 8월23일 공작원들의 탈출사건 발생 배경에 대해 "구타, 살해 등 일련의 부대내 상황에 절망감을 느낀 공작원들이 청와대 등 상급기관에 자신들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기 위해 부대를 탈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실미도사건 이후 부대의 성격을 은폐하기 위해 정부는 사실상 민간인인 공작원들의 신분을 공군이 관리하는 특수범들이라고 발표했으며
해당부대는 공작원들의 신상관련 서류를 소각하는 등 철저한 은폐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