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하늘 속 초승달에서부터, 꼬리를 축 늘어뜨린 시골집 개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그 어느 때보다 애잔해 지는 풍경. 간밤에 내린 비로 겨울이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 올 가을은 유달리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 어렵게 단풍이 들었다고 했는데, 그런 낙엽들이 그만 힘없이 떨어져 버렸다. 모든 것을 떨구고 떠나는 늦가을을 배웅하기로 한 것은 슬며시 왔다가 겨울의 입김에 쫓기듯 몰려가는 늦가을의 정취에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였다. 발밑에서 바스락대며 부서지는 소리, 아쉬울 것 없다는 듯 바람 한 줄기에 곡선을 만들며 뒹구는 낙엽들…. 젊은이들에게는 낭만과 운치를 만들어줄 법한 풍경인데도 제법 인생의 굴레를 돌아온 지금에 와서는 허전한 기운을 남겨주었다.
같은 마음으로 집을 나섰을까. 앞서가던 어르신 한분이 낙엽 하나를 주워들어 고요히 바라보더니 그들 무더기로 놓아 주고는 가던 길을 걷는다. 모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다 슬프다고…. 누군가 말했던가, 모르는 이라도 손을 잡고 등을 다독여 주고 싶을 만큼 앞선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누군가의 눈에 비친 나의 뒷모습도 그러리라. 발걸음을 재촉하며 뒷모습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 옛날 고향을 떠나올 때 연신 손을 흔들어주시며 어서 가라던 어머니는, 뒤돌아 볼 때마다 그대로 계셨었다. 자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자식의 뒷모습에 대고 성실과 성공을 기원하셨을 어머니가 계셨기에 자식은 타향에서도 어머니가 지켜보고 계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곤 했었다. 그때는 떠나오는 자식만 마음이 아린 줄 알았다. 하지만 어머니 나이가 되어보니, 그때 어머님 마음엔 얼마나 신산스러운 바람이 스몄을 지 짐작이 간다. 그런 스산한 바람이 저며 들어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이 저토록 으스러질 듯 작은 어깨의 뒷모습을 가지게 되셨는지도 모른다.
늦가을의 그윽한 풍경 속에는 그 옛날 어머니의 모습도 들어있고 앞서가던 노인의 뒷모습도 오버랩 된다. 어머니가 뒷모습을 지켜주셨듯이 이젠 자식이 돌려드릴 차례건만 작금의 시대엔 그것마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늙으면 돈이 친구요, 효자다.’ 어느 은행 팸플릿에서 본 이 글은 얼마나 삭막한 표현인가 하면서도 다시 보면 또 얼마나 귀에 쏙 들어올 만큼 현실적인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지금의 삶이 어렵더라도 나의 뒷모습과 내 자식의 무거운 어깨를 덜어주기 위해 국민연금은 늙어서 친구가 되고, 효자가 되리라 믿는다. 늦가을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겨울밤이 깊을수록 별이 더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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