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뉴스 이성현 기자]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고도 화학물질의 장기별 암 유발 가능성을 빠르고 체계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한국연구재단은 전남대 유선용 교수 연구팀이 화학물질이나 신약 후보 물질의 장기별 발암 위험을 동시에 예측할 수 있는 혁신적인 독성 예측 AI 모델을 구축했다고 1일 밝혔다.
그동안 새로운 화학물질이나 신약 후보 물질의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세포 실험이나 동물실험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했다. 이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유통되는 수많은 화학물질을 일일이 검증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뚜렷했다.
특히 화학물질은 체내에 흡수되고 해독되는 방식이 장기마다 달라 특정 장기에만 국소적으로 암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컴퓨터 독성 예측 기술은 이러한 장기별 차이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거나 각 장기를 단일 모델로 따로 분석해 예측의 정확도와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 폐, 위, 유방 등 4개 주요 장기를 대상으로 화학물질의 발암 위험을 동시에 예측하는 ‘다중작업학습(Multi-task 학습) AI 모델’을 제안했다.
이 모델은 분자의 구조를 점과 선으로 이뤄진 ‘그래프’ 형태로 인식해 원자들의 연결 관계를 인간의 뇌처럼 입체적으로 학습하도록 설계됐다.
이를 통해 여러 장기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발암 패턴과 각 장기만이 가진 고유한 독성 특징을 인공지능이 동시에 학습할 수 있게 됐다.
연구팀은 먼저 3개 장기의 데이터로 발암 패턴을 미리 학습시켜 모델의 뼈대를 잡은 후 이를 바탕으로 4개 장기 전체를 교차 학습하는 방식을 도입해 예측의 안정성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그 결과 AI가 암을 유발하는 핵심 분자 구조를 스스로 찾아내는 등 기존의 단일 장기 예측 모델보다 월등히 뛰어난 성능을 증명해냈다.
연구팀은 이번에 개발된 AI 기술이 실용화될 경우 신약 개발 초기 단계에서 발암 위험성이 높은 후보 물질을 사전에 빠르게 걸러내거나 우선 검토할 수 있어,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드는 동물실험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산업계 전반의 화학물질 안전성 평가와 정부의 규제 의사결정 과정에서 평가 시간·비용을 크게 아끼는 등 한층 체계적인 독성평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이 기술이 실제 산업 현장과 규제 기관에서 전면 활용되기 위해서는 향후 더 많은 발암성 데이터의 축적이 필수적이다. 화학물질의 실제 투여 경로와 노출 용량, 동물과 사람 간의 종 특이성 차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추가 연구가 과제로 남아있다.
유선용 교수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실험 전 단계에서 간, 폐, 위, 유방 등 특정 장기에 미치는 발암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예측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자 연구를 시작했다"면서 "가장 큰 난관은 장기별 발암성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점과 기존 데이터베이스마다 정보의 형식이 서로 달라 통합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흩어져 있는 발암성 데이터를 직접 수집해 체계적으로 정제하고, 화학 구조를 AI가 이해할 수 있는 그래프 형태로 변환했다"며 "데이터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여러 장기의 정보를 한 번에 학습시키는 다중작업학습을 도입해 장기 간 공통 독성 특징을 효과적으로 학습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더 다양한 장기와 화학물질에 대한 데이터를 대폭 모아 예측의 정확도를 고도화할 계획"이라며 "신약 개발과 암 예방 연구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독성 예측 플랫폼을 완성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